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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미술교육_나이에 따른 그림 발달 단계

by JamE art 2023.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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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 여아, 내 마음속에 가득한 사랑

 

 우리 원에서는 한번 등록해서 시작한 아이들이 고학년이 될 때까지 쭉 이어서 다니는 경우가 많다. 감사하게도 그런 경우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고학년이 될 때까지 지켜볼 수 있어서 나이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동화의 발달 단계가 있고 경험으로 대략적인 정리가 되었지만 명확하게 이론을 바탕으로 정리한 글을 읽고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아래 글은 앤드류 장의 책 창의적 미술교육 이론과 실제, 상상력이 자라는 미술 교실을 읽고 나의 경험을 곁들여 쓰는 글임을 밝힌다. 

 

 로웬펠트의 이론과 아동화의 발달 단계

 

*빅터 로웬펠드

 

심리학자이자 화가, 저술가로 현대 미술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미술교육학자이다. 1903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악기 연주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이는 그가 교육 분야와 시각예술, 공연예술을 좋아하고 연구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빈에서 미술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에 초등학교 교사와 시각장애인 학교에서 미술과 책임자로 일하다가 1938년 나치의 반 유대정책으로 35세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1939년 버지니아 햄프턴 대학교의 조교를 거쳐 1946년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미술교육학 정교수로 일하면서 아동미술교육 분야에서 주요한 업적을 남겼다. 대표 저서로는 창의의 본질(1938), 창의와 정신적 성장(1947) 등이 있다. 

 

 아이들의 나이에 따른 그림 발달 단계는 개개인의 성격과 환경, 흥미, 가르치는 교육자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앤드류 장은 여러 학자들 중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이자 V. 로웬펠드의 창의와 정신적 성장(한국어판: 인간을 위한 미술교육)에서 전개된 아동화 발달 과정에 대한 이론을 설명했다.

 

 로웬펠드는 이 연구를 통해 아이가 태어나면서 일정한 발달 단계를 거쳐 성장하듯 미술 교육도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게 주제와 재료, 표현 기법 등을 지도해야한다는 것은 학술적으로 잘 설명했다. 빅터 로웬펠드가 1947년에 이 이론을 처음 알린 것보다 지금 70년이나 지났고 교육 환경도 매우 다양해져서 과거보다 나이대별 단계가 많이 빨라졌다고 한다. 로웬펠드의 이론은 부분적으로 보강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시대가 변한 것을 감안하여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 

 

 로웬펠드는 아동화의 발달 단계를 정신적 성장에 따라 6단계로 제시했다.

(1) 자아를 표현하는 시기(만 2-4세)

(2) 자신의 표현을 시도하려는 시기(만 4-7세)

(3) 형태를 이해하는 시기(만 7-9세)

(4) 사실주의가 나타나는 시기(만 9-12세)

(5) 합리적 생각의 시기(만 12-14세)

(6) 판단의 시기(만 14-17세)

 

 

자아를 표현하려는 시기(만 2-4세)

 

로웬펠드의 이론에서 난화기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난화란 아무렇게나 그리거나 휘갈겨 그린다는 뜻으로 유아들이 손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리는 순서에 대한 개념도 없이 마구 끄적거리는 낙서를 하는 시기이다. 무의미한 선을 아무렇게나 마구 그려 놓으며, 선의 굶고 가늚도 유아들의 기분과 상태에 따라서 달라져서 최초의 자기표현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3단계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무질서한 그림단계로, 일반적으로 생후 18개월 이후인 이 초기 난화기에는 아무 곳에나 무의식적으로 긁적거리는 그림을 그린다. 

 두 번째는 제어된 그림 단계로, 손의 근육 운동으로 주로 직선과 동그라미 또는 쉬운 형태를 비교적 제어하여 표현하는 중기 난화기이다. 빠르면 4세, 보통은 5세-6세까지 동그라미를 그린 것이지만 제어가 아직 미숙해서 둥글둥글한 세모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고 연습을 거쳐서 6세중반 정도가 되면 원활하게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 같다. 

 세번 째는 이름을 지어 그리는 그림 단계로, 이 말기 난화기에는 대상을 인지하고 조금 더 구체적인 선들을 그리며, 그려진 것을 주위 사물과 연관 짓거나 엄마, 아빠, 강아지나 친구들의 이름을 붙여 설명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만드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손의 소근육을 단련시키는 시기이다. 직접 수저를 사용하면서 점점 근육 운동을 통해 발달하는 것이 눈으로 보여지고 하루가 다르게 그림을 그릴 때 필압이 세지는 게 느껴지는 시기이다. 앤드류 장은 연필보다 손으로 쥐기 쉬운 크레파스나 선이 선명하게 보이는 사인펜 같은 재료를 주는 게 좋고 자유롭게 그려볼 수 있는 넓은 종이를 추천했다. 

 

만 3세경이 되면 아이는 단순한 근육 운동에서 벗어나서 시각적으로 형태를 인지하고 개념적인 그림을 그린다. 이때는 다양한 재료나 주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아이들의 육체적, 정신적인 능력이 형성되는 시기로, 관찰하고 함께 이야기하면서 사고의 발달에 집중하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 이 때 정말 유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이가 그린 그림은 무슨 형태인지 잘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그려야지" 하고 대신 그려주거나 특정 대상을 그려야 한다는 고정된 관념을 심어주면 안 된다. 아이가 동그라미 두 개를 이어놓고 엄마라고 하면 그건 엄마가 되는 거고 실타래가 엮여 있는 낙서 같은 그림을 그리고 그건 강아지라고 한다면 강아지가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그림으로 그릴 수밖에 없다.(사실주의가 나타나는 시기) 이때부터 정정해주려고 한다면 아이는 "나는 못해 엄마가 그려줘" 한다거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의욕은 원천 차단하는 것이 될 것이다.

 

 만 4세가 되면 유치원에 들어가는 단계로 손의 놀림에서 제한적 자유를 가진다. 이 때는 아직 난화를 그리는 아이와 어느 정도 그림을 그리는 아이로 구분되는데, 이는 주변 환경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이 나이의 아이들은 집중력이 그렇게 길지 않다. 경험상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는 45분, 보통의 아이들은 30분이면 흥미를 잃는다. 그래서 화제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신의 표현을 시도하려는 시기(만 4-7세)

 

로웬필드의 이론으로 전도식기이다. 난화기를 지나 처음으로 의도적인 표현을 하는 시기이다. 생각이나 보이는 대상을 타인이 인지할 수있는 정도까지는 아직 아니지만 사람이나 동물, 사물 등의 대상을 최초로 의도적으로 선과 동그라미를 이용해 표현하는 단계이다. 이때 아이는 사물의 중요한 형태를 표현하고 공간과 대상을 구별할 줄 안다. 또한 색상도 구별할 줄 알지만 그 대상의 원래 색과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시기에는 사회적 경험을 넓혀 가는 시기로, 상징적인 그림을 그리거나 반복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습관이 있다. 

 

 이 때는 사실적으로 그리기보다는 관심있는 부분들 위주로 그리거나 과장되게 그리는 경우가 많다. 6살 때부터 가르친 아이가 있는데 큰 동그라미가 얼굴 바로 밑에 옆으로 넓은 타원, 그 아래 세로로 길쭉한 타원 두 개를 붙여놓고 사람을 그렸다. "이 사람은 팔이 없네?" 하고 물었더니 "팔은 뒤에 숨겨놓고 있어요. 이 사람은 거북이 같아요. 이 사람은 우주에서 거북이랑 같이 살아요."라고 말했다. 이때의 아이들은 생각이 매우 다양하고 판타지와 현실을 왔다 갔다 하는 시기여서 그런 생각의 표현을 존중하면 좋겠다. 손이나 발을 빼놓고 그리거나 사람의 측면은 못 그리고 항상 정면만 그리지만 각 사물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형태를 이해하는 시기(만 7-9세)

로웬펠드의 이론에서 도식기이다. 사물에 대한 개념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고 사물을 인지하여 형태대로 그리는 시기를 말한다. 이 때는 공간 개념을 쉽게 인지해서 땅이나 건물, 하늘을 뚜렷이 구분하며 보고 느낀 주변 자연의 색채를 잘 묘사한다. 아직 수평과 원근의 개념은 없기 때문에 일렬로 나열하여 그리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물속이나 건물 내부를 투시해서 그린다. 바다를 그리는 7세 아이가 신나게 문어랑 상어랑 그리고 있는데 옆에서 같이 수업하던 고학년 형이 혼잣말로 속삭였다. "물속은 보이지가 않는데..."

 이 시기에는 아이와 주변 환경 사이에 무의식적인 관계가 설정되어 있다. 

 

 사람을 그릴 때는 얼굴과 몸통 사이의 목을 생략하거나 손을 동그라미로 표현하는 등의 섬세한 선들은 무시한다. 

 

 이 때는 그림 실력을 발전시키고 창의적인 생각을 올릴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이후 사실기에 들어가므로 아이들은 그림에 대해서 흥미를 잃거나 심하면 포기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 시기에 속한 아이들의 그림이 가장 에너지가 넘치고 생각과 표현이 자유로운 편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하는 마음이 들정도로 아이디어가 나이에 비해 뛰어난 경우도 있다. 미술에 재능이 얼마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시기이다. 또한 나의 가르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기에 책임감을 느끼는 시기이다.  

 

사실주의가 나타나는 시기(만 9-12세)

로웬펠드의 이론 또래 집단기이다.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고 형태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시기이다. 

 디자인에 대한 이해를 시작하는 시기로, 공간, 질감, 비례, 크기 등에 대하여 어느정도 인지하고 구도를 이해하는 시기이다. 이전 시기에 아이들은 무엇이 앞에 있고 뭐가 뒤에 있는지 구별을 어려워하고 얼굴 중간으로 뒤에 있는 자동차 선이 지나가곤 했는데 공간 개념에 대한 이해가 되는 이 시기에는 사물을 겹쳐 그리기도 하고 사람의 얼굴도 세부적으로 표현한다. 색상도 주관적인 것에서 벗어나서 실제 존재하는 색상만을 쓰려고 한다. 얼굴을 빨갛게 칠하거나 다이내믹하게 색을 쓰던 시기에는 아이들의 그림이 재미있는데 이 시기에는 현실적이고 자칫 밋밋한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시기에는 실제 자신의 표현 한계와 이상 사이에서 불만을 느끼기 시작하여 약간 소극적으로 그림을 그리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표현하고자 하는 열정이 시들해지기도 한다. 

 

 이 시기의 미술에 대한 호감도가 미래에 미술활동에 큰 영향을 준다. 이후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흥미는 나중에 다시 연결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시기 한국에서는 미술을 그만두고 영수에 몰두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눈은 점점 높아져서 잘 그린 그림을 구분할 줄 아는데 내 실력이 안따줬을 때 흥미를 잃곤 하는데 이때 다양한 활동과 체험을 하면서 그리고 싶은 욕구,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겨야 하는데 멈춰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합리적 생각의 시기(만 12-14세)

 

로웬펠드의 이론에서 의사실기의 시기이다. 중학생의 나이로 신체적으로 변화가 일어나며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사실에 가깝게 그리는 것을 잘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기술이 따라가지 못한다. 이 단계에서는 자신이 즐기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그림을 그리려는 경향이 강하다. 인체를 그리기 시작하고 입체적 공간 개념을 이해하게 되며, 색과 디자인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한다. 특히 디자인에 대한 이해가 높아 자연스레 칠하고 단순화시키는 등의 작업이 빈번히 일어난다. 따라서 이때 디자인 원리의 이해나 색 차트를 만드는 등 좀 더 깊이 있는 미술로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중학교의 일일 클래스로 출강을 나간적을 제외하면 가르쳐 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이론에 기대어, 앤드류 장의 글을 통해 읽어볼 뿐, 경험이 바탕에 없으니 공감대가 없었다. 

 

판단의 시기(만 14-17세)

 

로웬펠드의 이론으로 결정기이다. 고등학생이 되면 미술을 전공을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부류로 나뉜다. 학교에서도 미술 시간이 없고 공부를 하는 시간이 늘며 아이들마다 취향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활동이나 주제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때는 기법을 배우거나 목적에 맞는 그림을 그리려는 노력이 강하게 나타나며 기술적 완성도를 매우 중요시한다. 

 


 

 아이들은 나이대별로 커가면서 그림을 그리는 단계가 있다. 어릴 때 누구나 미술학원에 다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를 외면하는 어른들을 많이 봐왔다. 미련이 있는 사람들은 "미술 잘하는 거 정말 부럽더라" 하고 못다 한 열정을 이렇게 말로 표현하곤 한다. 어릴 때는 그림을 흥미롭게 그리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커가면서 왜 그림을 그리지 않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을 표현하려는 시기에 폭발적으로 그림을 그려서 하루에도 몇 장씩 수북하게 그려내는 그림들이 정녕 내가 한 것이 맞나 싶게 나이가 들어서 보면 이 때는 이게 그렇게 재미있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럼, 왜 지금은 그리지 않지?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한국인들의 사회적 특징에서 찾아봤다. 

 프랑스에 미술학원 수업을 참여하러 갔을 때 아이들은 옆의 아이가 뭘 그리는지, 어떻게 그리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바로 옆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전혀 자기 작업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한국에서는 그림을 그릴 때 옆친구의 그림을 의식한다. 만약 옆이나 앞에 앉은 친구가 그림을 잘 그린다면 더더욱 그 그림을 따라 가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나'가 중요한 한국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순간조차도 옆 사람과 비교하여 내가 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소극적으로 변하고 흥미를 잃게 되며 점점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는 절차를 밟게 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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