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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class

데이비드 호크니 따라하기

by JamE art 2023.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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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여름'이라는 주제로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를 진행했다.

 

매달 커리큘럼을 짤 때 나의 부족함을 늘 느끼며 아이들에게 다양한 재료와 수많은 작품을 알려주고 익숙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여름에 대한 주제를 하면서 그 첫 번째로 현대미술 작가인 '데이비드 호크니'의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라는 작품을 따라 해보기로 했다. 

 

수업을 시작하며

 

아이들에게 무작정 따라 그리라고 하는 것은 카피를 위한 그림일 뿐, 아이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지 않는다. 그래서 먼저 이 작품을 보여주며 어떤 상황인지를 물어봤다. 

"이 그림을 보면 어떤 상황인 거 같아?" 하고 물었을 때 6세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대부분의 아이는 직관적으로 느끼는 대답을 했다.

"방금 사람이 수영장 안으로 다이빙을 했어요."

"사람이 물에 풍덩 들어갔어요."

 

 당장 눈앞에 사람이 있지도 않은데 이렇게 6살 아이들에게도 무엇을 그렸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이 좋았다. 현대미술은 난해하고 어렵다는 생각을 접게 해주는 작가이고 그가 했던 말은 작업을 할 때 어떤 자세로 임하는지를 보여준다.

 

 "나에게 있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사진을 만드는 일이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묘사하지 않는 그림에는 관심이 없다. 내 말은, 그다지 내 맘에 흥미롭지 않아도 완벽하게 좋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디오 아트 1978

 

 

데이비드 호크니에 대해서 알아보자

 

데이비드 호크니는 영국 출신이지만 캘리포니아를 여행하면서 미국 미술과 문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 '더 큰 첨벙'은 눈부실 정도로 햇빛이 강한 LA의 여름을 그렸다. 일상의 평온한 풍경을 그렸는데 수직과 수평의 정적인 구도에 다이빙대가 대각선으로 들어오면서 동적인 요소를 주면서 조화를 이루었다.

 

 캘리포니아의 한 주택가의 한가한 적막감과 다이빙을 한 후에 튀기는 물방울들이 경쾌함을 준다는 해석을 읽었는데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은 거창한 해석이나 평론을 읽지 않더라도 그림을 보고 내가 느꼈던 그 느낌이 바로 작가가 의도했던 것이어서 그가 좋다. 이번 작품을 아이들이 그려보면서 수업 내에 여러 번 '데이비드 호크니'라는 이름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함으로써 아이들이 그의 이름을 외우고 "데이비드 호크니의 다른 작품은 어떤 게 있어요?" 하고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이 많았으니 이번 수업은 대성공이다.

 

비교적 간단한 스케치여도 채색이 다 되어 있는 그림을 보고 그릴 때면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있다. 형태를 찾아야 하는데 색이 먼저 눈에 들어와서 그런 거 같다. 그래서 스케치만 따로 샘플을 그려뒀는데, 그리기가 어려워하는 친구들은 먹지 위에 따라 그릴 수 있도록 했다. 근데 우리 아이들 언제 이렇게 다들 늘었어! 하고 대견할 정도로 짧은 시간에 스케치를 마무리하고 채색으로 들어갔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올해로 85세이다. 

아이들에게 이 작가를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내 맘대로 "살아있는 가장 유명한 화가'라고 했다. 

그가 1972년에 그린 '예술가의 초상(수영장의 두 인물)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은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9030달러(우리 돈으로 약 1020억)에 낙찰되었다. 나도 가늠이 안 되는 정말 큰돈인데 아이들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큰돈이라서 이렇게 높은 가격에 팔릴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야. 하고 말하면. '저는 한 번도 못 들어봤는데요.' 하는 의심의 눈초리는 일단 거둔다.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은 사진을 만드는 일'이라고 데이비드 호크니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는 예술가의 초상을 먼저 그려봤으나 생각처럼 안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조수와 친구를 모델로 동원해서 연출 사진을 찍어서 그 사진을 보고 그렸다. 예술가의 초상에서 물 밖에 서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전 남자친구인 피터 슐레진저라고 한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게이라는 사실을 그의 팬이라면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우리 꼬마 친구들에게도 이야기를 해줘야 하나 여러 번 망설였다. 미술 선생님이기 때문에 성에 대한 설명을 할 때 어디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쉽게 왜곡 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미리 공부를 못했다. 그래서 성교육의 범주까지 건드려도 되는 걸까 깊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시도를 못 했다. 이번 수업으로 아이들이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성인으로 커나간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늘 새롭게 도전하는 데이비드 호크니

 

데이비드 호크니는 언제나 그림이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다고 믿었다고 한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대혼돈이었을 때 2020년 4월, 호크니는 아이패드로 그린 드로잉을 BBC에 보냈고 더타임즈, 가디언 등의 영국 주요 일간지 1면에는 코로나 확진자가 몇 명이고 감염자의 경로가 어떻고 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아닌 그가 그린 노르망디의 환한 자연이 인쇄되었다. 코로나로 지쳐있던 사람들에게 그의 그림은 예술의 힘을 보여주었다. BBC는 헤드라인에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뉴스의 일시정지."

 

 데이비드 호크니가 85세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2010년부터 약 12년간, 그러니까 73세부터 아이패드를 손에 익히고 그림을 그리는 디지털 드로잉을 하는 그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움 없이 해본다는 것이 존경스럽다. 

  

 2019년부터 그는 프랑스의 노르망디에서 살고 있다고 하는데 2022년 1월 프랑스 파리로 한 달 살기를 하러 갔을 때 우연히 그의 전시를 보게 되었다. '다음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 하는 그가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들을 전시한 것을 실물로 봤을 때 깜짝 놀랐다. 

 

 모네의 360도 그림을 보기 위해 오랑주리 미술관을 갔을 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봤다. 픽셀까지 다 보이는, 누가봐도 디지털로 그린 그림을 전시했기에 신진 작가 그림인가 하고 작가의 이름을 확인했을 때 거짓말인 줄 알았다. 응? 진짜 데이비드 호크니? 그제야 "DAVID HOCKNEY" 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고 신기했다. 그의 전시를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보게 되다니.

 

 그가 약 12년간 갈고 닦은 아이패드로 그린 디지털 드로잉은 길이가 상당했다. 긴 복도를 연이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표현했다. 진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는 데이비드 호크니.

 

 오랑주리 미술관을 관람할 당시에 휴대폰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아서 많은 사진을 담지 못해 아쉬웠다. 이렇게 아이들에게 데이비드 호크니를 소개하고 그의 그림을 그려보는 수업을 할 거라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이 할아버지도 칠순이 넘긴 나이에 디지털 드로잉을 손에 익히고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한다고 사진을 많이 찍어왔어야 했는데.

 

화가의 그림을 따라 그려본다는 것은

 

 유명한 화가의 작품을 보고 설명을 듣는 것보다 더 깊이 빠져드는 방법은 그 작품을 직접 그려보고 기법을 체험해보는 것이다. 때로는 아이들이 크게 흥미를 끌지 못할 때도 있고 이번 '더 큰 첨벙' 그림을 따라 그려보는 것처럼 아이들이 몰입해서 그려보는 시간을 가질 때도 있다. 아이들이 큰 호응을 하고 난 수업은 나 역시 그 여운이 길다.

 나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서 따라 그려보는 것은 여러 연습이 되기도 한다. 유명한 작품들을 학생들이 따라 그려보면서 표현법을 익히고 그 작품에 대해서 깊이 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은 틀림없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이번 더 큰 첨벙 그림을 그려보고 난 이후 아이들이 물이 튀는 표현을 어려워하지 않고 스르륵 물감으로 손쉽게 표현하는 것을 봤다. 단순함 속에 하고자하는 이야기와 분위기가 다 담겨있는 이 그림을 보고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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