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피카소에 대해서 수업을 하면서 그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가 보는 시간이었어요. 보통 30분 정도 이론시간인데 피카소에 대한 이야기도 많고 작품도 많다 보니 40-50분씩 길어져서 그림을 그릴 시간이 짧아졌지 뭐예요.
그런데 설명이 조금만 길어져도 아이들은 금세 지루해하니까 그림에서 어떤 느낌이 느껴지는지 질문하거나 퀴즈를 내면서 아이들의 흥미를 끌려고 노력해요. 이야기들이 재미있는지 푹 빠져서 듣는 친구들도 있고, 듣지 않고 딴짓을 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남자아이들은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해주려고 하는데, 그냥 들려주기만 했을 때보다 눈을 보며 교감하면 오래 기억에 남는 거 같아요.
파블로 피카소는 93살이라는 긴 시간을 살았던 화가다 보니 그림을 그린 양도 많고 생애동안 그림이 변천사가 있어서 시대순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준비하여 아이들에게 제목에 맞게 작품을 배치해보도록 첫 번째 미션을 줬어요.
작가들을 초등학생들과 알아가다보면 동성애인 화가도 있고 바람둥이 화가도 있고 다양하잖아요? 그래서 어디까지 노출해서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이 돼요. 지난번 키스 해링에 대한 수업을 했을 때 미리 조사해 오도록 숙제를 줬는데, 아예 모르는 아이들에게 설명을 할 때보다 저도 훨씬 수월하고 아이들도 흥미가 훨씬 있었던 거 같아요. 그때 키스 해링은 동성애자이고 에이즈라는 병에 걸렸다는 조사를 미리 해와서 동성애자가 뭔지, 에이즈라는 병이 뭔지 이해하고 온 아이가 있었거든요. 아이가 "저는 거의 모든 병을 알고 있어요." 하는 거예요. 어머님이 간호사 셔서 엄마의 직업과 의학에 아이가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질문을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렇게 이해를 정확하게 하고 있는 아이가 있어서 너무 고마웠어요.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거든요. 이 아이가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설명을 너무 잘해줘서 다른 아이들도 쉽게 이해하고 들어줬어요. 키스해링에 대한 설명을 하고는 "다른 병 아는 거 그럼 이야기해 봐." 하는 다른 친구의 물음에 위암, 간암, 대장암 등등 이야기가 살짝 삼천포로 빠지긴 했지만요.
이번 피카소에 대한 수업을 할 때는 아비뇽의 처녀들 작품을 이야기로 또 고민이 시작되었어요. 1학년 한 아이가 물었어요.
"이 여자들은 왜 다 벌거벗고 있어요?"
보통은 보수적으로 설명을 해주고 넘어가는데 지난 월요일 키스해링할 때 동성애에 대해서도, 에이즈에 대해서도 엄마한테 설명을 들은 아이를 보고 자신감이 생겼어요. 아비뇽이 뭘까? 아비뇽의 여인들, 아비뇽의 처녀들, 아비뇽의 아가씨들 등 같은 작품을 두고 여러 가지 제목이 있는데 그 아비뇽이 뭔가 하는 물음에 "(오른쪽에 앉은 여자를 가리키며) 이 여자 이름이 아비뇽이에요.", "아비뇽은 피카소가 그린 이런 그림을 보고 말하는 거예요." 하고 다양한 대답들이 나왔죠. 그래서 아비뇽은 파리 같은 도시를 말하는 거야. 했더니 아~~ 하고 대답들을 했어요.
그러면서 지금은 전문 누드 모델들이 있어서 누드 그림을 그릴 때는 모델을 학교로 초대하거나 화실로 초대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이 때는 누드모델이 없었다고 했죠. 매음을 하는 여인이었어라고 설명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충격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이 되는 거 같습니다. 아비뇽의 여인들의 직업을 두고, 반 고흐의 여자친구인 시엔을 두고 그들을 직업을 설명하기에는 여기까지 알 필요가 있을까 하는 브레이크가 머릿속에 자동으로 걸리는 거 같아요.
파블로 피카소
설명을 하기는 쉽지만 눈으로 보는게 아니라 가슴으로 와닿는 작품을 느끼도록 하는 건 정말 어려운 거 같아요. 저 역시 대학교 때는 공부로 미술사를 했고, 어두운 강의실에서 빔으로 수없이 많이 지나가는 작품들을 보면서 필기하느라 정신이 없거나 아니면 잠이 왔거든요. 이 아이들 중에서는 언젠가 전공으로 미술을 하면서 공부로 미술사를 해야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정보로 가득한 머리로 보는 미술 말고 가슴으로 느껴서 너무 좋은 작품, 그중에 본인이 정말 좋아하는 작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좋아하는 작가가 있냐는 질문을 하면 아무도 신나서 자신 있게 좋아하는 작가를 말하는 아이가 없어요. 아는 화가는 반 고흐, 모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아주 유명한 화가만 있죠.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아비뇽의 아가씨들> 이나 <우는 여인>을 보고 왜 이렇게 그렸어요? 하고 묻는 아이가 있어서 아주 좋은 질문이라고 칭찬을 하며 피카소가 12살, 14살에 각각 그린 그림을 보여줬어요.
지난번에 유화를 해보고 빨리 마르지도 않고 물감이 뻑뻑해서 기존에 수채물감이나 무른 아크릴 물감을 써본 아이들이 유화를 힘들어했거든요. 피카소가 그린 그림은 유화로 그린 거고 어릴 때 그린 거라고 보여주니까 아이들이 우와하고 탄성을 질렀어요. 이미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건 피카소한테 너무 쉬웠다고, 그렇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건 그에게 재미가 없었을 거라 얘기하며 입체파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아비뇽의 아가씨들의 그림을 보면 큰 눈과 정면의 얼굴 모습에 측면의 코, 엄청나게 큰 발 등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예요. 쭈그리고 앉아있는 여자는 등을 보이고 있는데 얼굴은 또 정면인 모습을 <우는 여인> 그림도 보여주며 한 화면에 둘 이상의 시점이 들어간 것을 설명했어요. 그림은 평면인데 입체적인 모습을 담기 위해서 이렇게 그렸는데 당시에는 굉장히 파격적인 그림이어서 다들 낯설어했고, 이런 새로운 시도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 피카소가 위대한 화가라고 평가받는 거라고.
사진처럼 사실적인 그림이 잘 그린 그림이라고 인정 받는 시대에 새로운 시도를 했다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를 했을까, 친한 친구들에게 먼저 보여주고 의견을 물었을까? 하고 물었는데, 아이들 모두 "저 같으면 친구한테 먼저 보여줄래요." 하고 답을 했어요. 피카소는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그려서 친구들에게 보여줬는데 다들 그의 그림을 비판했어요. 그래서 그 그림을 둘둘 말아서 화실 구석에 처박아 놓았다가 시간이 지나 공개하게 되었죠.
스페인 사람이었지만 19살에 프랑스 파리로 건너와 있을 때 그는 가난했어요. 시대별로 유명한 작품 6가지를 선정해서 아이들과 같이 봤는데 첫 번째는 <기타 치는 눈먼 노인>이었어요. 이 그림을 보면서 느낌을 먼저 물었어요.
"즐겁고 밝아보여, 우울하고 차가워 보여?" 갓난아이도 자신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말로 하지 않아도 기가 막히게 그걸 알아차리듯 그림을 보고 느껴지는 그 느낌은 아이들이 정말 잘 느끼는 거 같아요. 우울하고 차가워 보인다는 대답을 듣고 피카소의 친구 카시지마스 이야기를 했어요. 피카소가 매우 가난한 시기에 그린 이 시기를 이 파란 그림처럼 청색시대라고 하는데 친구 카시지마스가 자살을 하고 피카소는 더욱 우울하고 힘들어해서 이런 류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고. 그러면서 4년 뒤 그린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보여주며 그림풍이 변한 것을 눈으로 확인했어요.
<세 악사> 그림을 같이 보면서는 제일 먼저 질문을 받았어요.
"악사가 뭐예요?"
"악사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야."
그러면서 더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동영상을 보여줬어요. 제가 파리 한달살기를 할 때 지하철역 환승구간에서 봤던 현악 4중주 악사들이었는데 정말 멋들어지게 연주를 했거든요. 이렇게 파리에는 예술가들이 정말 많아서 길거리를 지나가다가도, 지하철 역에서도 이렇게 많은 연주자들이 연주를 한다고. 이런 악기를 연주하는 3명을 피카소가 그렸다고.
제일 왼쪽에 있는 사람은 클라리넷을 부는 사람이고 옆에는 기타를 치고 있고 제일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악보를 들고 있다고 설명했어요.
어릴 때 사실적으로 그림을 잘 그리는걸 보여주고 이런 그림들을 봐서 그런지 아이들도 신뢰를 하는 거 같아요. 처음부터 세 악사를 보여줬다면 "왜 이렇게 그렸어요?"라고 물었을지도 몰라요.
그다음 작품으로 <게르티카>를 보여줬죠. 아이들은 소도 있고 말도 있는 걸 보고는 처음에 재미있는 그림이라고 봐요. 그런데 바닥에 죽어있는 사람, 절규하는 사람 등 사람들의 표정을 연기하며 절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2천 명의 사람이 죽었던 사건을 그린 그림이라고 말해주면 아이들의 표정이 어두워져요. 이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남과 북 전쟁을 이야기하면서 피카소가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져요.
미술 작품과 작가들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와닿지 않을 때가 있어요. 이해를 하면 가슴으로 와닿는데, 이해가 안되니까 감동적이지 않은 거 같아요.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더 친숙한 거, 잘 알고 있는 걸로 비유를 해주려고 해요. 어려운 단어를 얘기하면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물을 때 쉬운 버전으로 단어를 다시 이야기해 주듯이 그림에 얽힌 이야기나 사건도 알기 쉬운 비유와 함께요.
아이들이 그려볼 그림은 뭐로 할까 하다가 <우는 여인>으로 정했어요.
마음같아서는 <우는 여인> 같은 그림 스타일로 본인의 얼굴을 입체적으로 그려보자고 하고 싶었는데 망설이고 못하면 자신감이 없어질까 봐 한 가지만 집중하기로 했어요. 아이들이 그림을 이해하고 좋아하게 하기!
그래서 두가지 선택권을 줬답니다. 직접 우는 여인을 스케치해 보거나 준비된 스케치 위에 채색을 해보거나.
우는 여인 스케치를 미리 해두고 프린트를 했답니다. 바로 위에 있는 사진인데 저장하고 쓰셔도 됩니다. 아이들이 친숙해지고 그림을 보는 즐거움을 알아가면 좋겠습니다.
<우는 여인>은 파블로의 다섯번째 여자친구 도라예요. 피카소는 바람둥이였고 여자친구 도라의 실물 사진을 보여줬죠.
그러면 열에 일곱은 묻는 질문이 있어요. "우는 여인은 뭐 때문에 우는 거예요?"입니다.
우는 여인은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같이 상상해보자고 했어요. 뭐 때문에 우는 거 같아? 했더니 바람둥이 피카소가 헤어지자고 해서 울었다는 아이도 있고 둘이 싸워서 울었다는 아이도 있었어요.
직전에 게르니카에 대한 설명을 했거든요. 게르니카를 그리는 중에 우는 여인을 그렸는데 도라도 스페인 사람이야. 그래서 자기 나라의 아픔을 같이 슬퍼했기 때문에 울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더니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더라고요.
우는 여인은 감상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스페인 내전에서의 인민적인 고통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고 주변에 사람들이 많은데도 여인이 혼자 울고 있는 것은 현대인의 고독과 분리를 나타낸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인간의 고통과 비극을 나타내며 그녀가 나타내는 감정은 모두들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명확하게 이것때문에 그런 거야 하고 설명이 완벽하게 갖춘 그림보다 해석의 여지가 여러 개인 작품이 저는 좋습니다.
<우는 여인>을 그리면서 아이들이 곱씹어서 생각해보고 피카소에 대해 많이 알아가는 시간이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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